외규장각 도서- 프랑스 반출부터 반환까지의 모든 과정
조선시대 왕실의 기록 유산 중 하나인 외규장각 의궤는 한국 고문서 중에서도 가장 귀중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이 소중한 문화재는 19세기 프랑스에 의해 약탈되었고, 140여 년 동안 외국에 머물다 어렵게 반환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외규장각 도서 의미, 어떻게 반출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반환되었는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외규장각 도서란?
외규장각은 조선 후기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복을 기리기 위해 1782년 강화도에 세운 왕실 전용 도서관입니다.
이곳에는 주로 왕실 의례나 국가 행사에 대한 문서인 "의궤(儀軌)"를 비롯해 다양한 왕실 기록물이 보관되었습니다.
주요 특징:
- 의궤: 왕실의 혼례, 장례, 즉위식 등 주요 의식을 그림과 함께 정리한 책
- 외규장각: 내규장각(창덕궁)과 달리, 특별히 사도세자 추모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됨
- 문화재 가치: 당시 기술, 예술, 정치 체계를 보여주는 귀중한 1차 사료
2. 외규장각 도서의 반출 – 1866년 병인양요
병인양요와 프랑스군의 약탈
1866년 프랑스는 조선의 "천주교 박해(병인박해)"를 이유로 강화도를 침략했습니다.
이때 프랑스 해군은 외규장각에 보관 중이던 수백 권의 도서와 문서를 약탈, 자국으로 반출합니다.
- 약 297권 이상이 약탈되어 프랑스 "국립도서관(BNF)"에 소장
- 대부분이 의궤, 서적, 왕실 도장, 기록화 등 귀중한 문서
- 조선 정부는 이후 수차례 반환을 요구했으나 무산됨
3. 반환 과정 – 140년 만의 귀환
반환 요구와 외교적 갈등
한국은 1970년대 이후 꾸준히 도서 반환을 요구했지만, 프랑스 측은 이를 “국가 소유”로 간주하며 반환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계기로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가 반환을 약속하면서 큰 전환점이 마련됩니다.
반환 방식: 영구 대여 형식
- 2011년, 5차례에 걸쳐 총 297권이 한국으로 반환
- 단, “기증”이나 “소유권 이전”이 아닌 ‘5년 단위의 영구 대여’ 방식
- 반환된 도서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전시 중
4. 왜 ‘영구 대여’ 형식일까?
프랑스는 헌법상 국가 자산은 타국에 양도 불가라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완전한 소유권 이전이 불가능했고, 대신 외교적 절충안으로 '영구 대여' 형식이 채택된 것입니다.
5. 외규장각 도서 반환의 의의
문화 자주권 회복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은 단순한 문화재 회수 그 이상으로, 한국이 외세 침탈로부터 빼앗긴 문화 주권을 되찾은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 국가 문화유산의 가치 재조명
- 향후 다른 약탈 문화재 반환 협상에 긍정적 선례 제공
- 국민적 자긍심 고양
6. 외규장각 도서, 단순한 책이 아닌 '역사의 증인'
외규장각 도서는 옛날 문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조선 왕실의 삶과 문화, 역사 기록의 집대성체이며, 침탈과 반환을 모두 경험한 문화 자산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도서를 통해 조선의 지혜를 되돌아보고, 잃어버린 역사를 다시 되찾는 데에 성공한 이야기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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