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창원에 숨겨진 보물, ‘목화자단기국’
일본 나라(奈良)의 도다이지(東大寺)에 위치한 "정창원(正倉院)"은 일본 황실이 간직해 온 천 년 보물이 보관된 곳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유물이 바로 "목화자단기국(木畫紫檀棊局)"이라는 고대 바둑판입니다. 이 바둑판은 1400년 전 백제 의자왕이 일본 황실에 선물한 것으로 전해지며, 그 예술성과 역사적 가치는 실로 놀라운 수준입니다.
2. 백제 의자왕의 선물로 전해지는 바둑판의 비밀
이 바둑판은 단순한 오락 기구가 아닌, 왕국의 외교 전략이자 예술품이었습니다.
- **자단(紫檀)**이라 불리는 스리랑카산 고급 나무로 제작
- 윗면엔 코끼리 상아로 줄을 새기고, 정교한 361개의 선을 표현
- 서랍 구조는 정교하게 설계되어 양쪽이 연동되어 열리는 구조
- 바둑알은 상아로 제작 후 남색과 붉은색으로 염색되었고, 긴 꼬리의 새와 꽃 문양을 조각한 ‘발루(撥鏤)’ 기법 사용
- 바둑알을 담는 통은 은판으로 장식되어 "은평탈합자(銀枰脫合子)"라 불립니다
이 정교한 공예품들은 일본의 황후 고묘(光明)가 남편 쇼무(聖武) 천황의 49재를 맞아 756년 도다이지에 봉헌하면서 역사 기록 속에 등장합니다. 헌물장에는 “백제 의자왕이 붉은 옻칠을 한 궤에 담아 보냈다”는 설명과 함께 바둑판과 바둑알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나옵니다.
3. 17개 화점이 증명하는 백제의 바둑문화
바둑판 위의 점, 즉 "화점(花點)"은 바둑에서 중요한 기준입니다. 일반적으로는 9개의 화점을 사용하는데, 목화자단기국에는 17개의 화점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는 백제의 고유한 바둑 방식인 "순장바둑"에서 사용하는 방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순장바둑’은 바둑알을 미리 배치하고 시작하는 방식으로, 일반적으로 150개의 바둑알만 있으면 게임이 가능했습니다. 목화자단기국에 함께 보관된 바둑알 세트도 각각 150개 안팎으로, 이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바둑서지학자 안영이는 저서 『다시 쓰는 한국바둑사』에서 “17개의 화점은 백제산임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라고 주장하며, 이 바둑판은 분명히 백제 의자왕이 일본에 보낸 선물이라고 단언합니다.
4. 상아와 낙타, 코끼리… 이국적 소재는 무엇을 의미할까?
이 바둑판에는 다음과 같은 이국적 소재가 쓰였습니다.
- 상아 (한반도에선 나오지 않음)
- 자단나무 (스리랑카산)
- 코끼리, 낙타, 공작, 열대 과일 등 남방 이국적인 문양
이러한 재료는 단순한 장식을 넘어, 당시 백제가 남방과 활발히 교류했던 해상 강국이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일본서기에는 백제가 낙타를 일본에 보냈다는 기록도 존재합니다. 단순히 중국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아라비아, 인도, 서역과의 연결 가능성도 제기되는 대목입니다.
5. 실크로드? 백제? 기원을 둘러싼 논쟁
목화자단기국의 기원을 두고 학자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뜨거운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백제설을 지지하는 측
- 바둑판과 바둑알이 한 세트로 제작된 정황
- 17개의 화점 → 순장바둑
- 상아 사용과 섬세한 공예는 백제 공예의 정수
- 의자왕의 바둑알, 바둑통과 함께 일본에 전달된 정황
▶ 반론: 당나라 또는 서역 기원설
- 헌물장에 바둑판이 따로 떨어져 기재
- 공예 문양이 페르시아풍, 서역 분위기 강함
- 자단, 상아, 낙타 등 백제에서 흔치 않은 소재
- 순장바둑이 등장한 시기가 18세기 조선이라는 주장
중국 학계는 이를 당나라 유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며, 일본 내 일부 학자들도 문양이 당조 문양과 유사하다고 분석합니다.
그러나 일본의 지질학자이자 바둑사 연구자 오가와 다쿠지는 “바둑판과 바둑알은 반드시 세트”라며 백제 의자왕 설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6. 바둑판이 전하는 망국의 슬픔
백제 의자왕은 왜 이토록 값진 바둑판과 바둑알을 일본에 보냈을까요? 그것은 일본을 백제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최후의 외교 수단이자, 망국의 슬픔을 전하는 예술적 유산이었습니다.
실제로 일본의 내대신 후지와라 가마타리는 죽기 전, “백제 멸망은 나의 판단착오였다”고 고백하며 의자왕의 유품에 대한 후회와 경외심을 드러냈다고 전해집니다.
바둑돌에 새겨진 긴 꼬리의 새는 마치 나라를 잃은 왕의 슬픔과 절절한 마지막 외교 노력을 담고 있는 듯합니다.
7. 목화자단기국은 바둑판이 아니라 메세지다
-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바둑판이자, 미스터리를 간직한 예술품
- 17개 화점, 상아 사용 등 백제 고유 문화를 반영한 결정적 증거
- 동아시아 고대사, 바둑사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유물
목화자단기국은 바둑판이 아니라, 하나의 메시지였습니다. 그 메시지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다시 백제, 다시 동아시아 고대 문명으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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