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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라에서 발견된 경교 십자가- 동방의 실크로드를 거쳐온 기독교의 흔적

by 전설시대 2025.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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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에서 발견된 경교 십자가: 동방의 실크로드를 거쳐온 기독교의 흔적

– 고대 한국에 전해진 초창기 기독교의 역사 –

1. 경교(景敎)란 무엇인가?

경교는 기독교의 한 분파인 네스토리우스파(Nestorianism)로,
서기 5세기경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였던 네스토리우스(Nestorius)의 가르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가르침은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고,
이후 네스토리우스를 따르던 이들은 동쪽으로 이주해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중국을 거쳐
동아시아 전역에 퍼지게 됩니다.

중국에서는 635년 당나라 태종 때 정식으로 받아들여졌고,
이를 경교(景敎)라 부릅니다. 한자로는 "밝은 가르침"이라는 의미예요.

2. 신라에서 발견된 경교의 십자가 – 유물로 본 전파의 흔적

  대표 유물: 경주 괘릉 출토 은제십자가

  • 발견지: 신라 경주의 괘릉(掛陵) 근처
  • 소재: 은제(銀製), 십자 문양이 새겨진 장식품
  • 형태: 동방 기독교에서 유래된 전형적인 십자형 문양
  • 추정 시기: 신라 하대 또는 통일신라 시대 (8~9세기경)

이 십자가는 전통적인 서양 십자가와는 형태가 다소 다르며,
동방 경교 특유의 장식적 요소가 포함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실크로드를 통해 경교가 신라까지 유입되었음을 강하게 시사하는 증거입니다.

3. 어떻게 신라에 경교가 전해졌을까?

신라는 당시 활발한 국제 교류를 통해 다양한 문화를 수용했습니다.

  • 실크로드 육상·해상 루트
    → 중앙아시아에서 **장안(長安)**을 거쳐 신라까지
  • 당나라와의 외교 사절 교류→ 다수의 신라인 유학생, 승려, 사신들이 당나라에서 활동

 특히 당나라에 있던 **신라방(新羅坊)**에서는

다양한 종교가 공존했고, 경교 역시 개방적인 지식층을 통해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4. 경교 십자가의 역사적 의미

 가. 신라의 종교적 포용성

  • 신라는 불교를 국교로 삼았지만,
    외래 종교에 대해 비교적 관용적이었던 국가였습니다.
  • 경교,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등도 유입되었으며
    그 흔적들이 일부 유물에 남아 있습니다.

 나. 글로벌 네트워크의 상징

  • 경교 십자가는 단순한 종교 상징을 넘어서,
    신라가 국제 교류와 문화 수용에 적극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유물입니다.

 다. 기독교의 동방 전파사 연구에 중요한 단서

  • 현대 한국 기독교 이전에 이미 고대 왕국에
    기독교의 한 갈래가 도달했다는 점은
    학계에서도 흥미로운 연구 주제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5. 잊힌 역사 속 기독교의 그림자

우리는 흔히 한국 기독교의 시작을 19세기 선교사 활동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1,000년 앞선 신라 시대,
실크로드를 통해 이 땅에 이미 기독교의 한 줄기가 들어와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종교사와 문명 교류사를 다시 바라보게 만듭니다.

신라의 경교 십자가는 작은 유물이지만,
그 속에 담긴 세계사적 의미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빛은 동쪽에서도, 작게나마 피어났다.”

십자가무늬 장식